달러의 기축통화는 무역적자를 피할 수 없다? 트리핀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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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통화국이 왜 무역 적자를 겪을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질문은 국제 경제와 통화 시스템의 본질을 파고드는 핵심적인 주제입니다. 미국이 대표적인 기축통화국으로서 오랜 기간 무역 적자를 유지해 온 점을 중심으로, 이 현상의 원인을 경제적, 구조적, 역사적 관점에서 분석해 보겠습니다.
무역적자

1. 기축통화의 정의와 역할

기축통화(key currency)는 국제 무역, 자본 거래, 외환 보유 등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통화로, 현재는 미국 달러(USD)가 이에 해당합니다. 달러는 전 세계 외환 거래의 약 88%(2022년 BIS 기준), 국제 결제의 약 60%(SWIFT 기준), 그리고 외환 보유의 약 59%를 차지하며 글로벌 경제의 중심축 역할을 합니다. 기축통화국은 다음과 같은 특권과 책임을 가집니다:
  • 특권: 달러는 세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결제 및 저장 수단으로, 미국은 낮은 비용으로 차입하고 달러를 찍어 국제 결제를 할 수 있습니다.
  • 책임: 달러를 글로벌 유동성으로 공급하려면 미국이 달러를 해외로 유출시켜야 하며, 이는 무역 적자나 자본 유출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구조적 특성 때문에 기축통화국은 무역 적자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아래에서 주요 이유를 단계적으로 분석합니다.

2. 무역 적자가 필연적인 이유

(1) 트리핀 딜레마(Triffin Dilemma)

기축통화국의 무역 적자 필연성을 설명하는 핵심 이론은 ‘트리핀 딜레마’입니다.
1960년 경제학자 로버트 트리핀이 제시한 이 개념은 다음과 같습니다.
  • 글로벌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기축통화(달러)의 충분한 공급이 필요합니다. 이는 국제 무역, 투자, 외환 보유를 뒷받침하기 위함입니다.
  • 하지만 달러를 해외로 공급하려면 미국이 무역 적자나 자본 유출을 통해 달러를 외국에 제공해야 합니다. 무역 적자를 통해 달러가 수출국(예: 중국, 독일)으로 흘러가고, 이들이 달러를 외환 보유고로 쌓거나 미국 자산(국채, 주식)에 재투자합니다.
  • 문제는 무역 적자가 장기화되면 달러의 신뢰도가 하락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적자를 줄이면 글로벌 달러 공급이 줄어 세계 경제가 위축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은 2024년 무역 적자가 약 9,710억 달러(상품 기준)로, 이는 달러가 중국, 유럽, 일본 등으로 유출되어 이들 국가의 외환 보유고를 채우는 구조를 보여줍니다. 만약 미국이 무역 흑자를 기록하면 달러 공급이 줄어들어 글로벌 유동성이 부족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2) 달러의 수요와 과소비 구조

기축통화로서 달러는 전 세계적으로 높은 수요를 가지며, 이는 미국의 소비와 수입 의존도를 높입니다:
  • 강한 달러: 달러의 신뢰성과 안정성은 미국 소비자들에게 수입품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예를 들어, 중국산 전자제품이나 유럽산 자동차가 달러 강세로 상대적으로 저렴해지면서 미국의 수입이 증가합니다.
  • 과소비: 미국은 GDP 대비 소비 비중이 약 68%로, 다른 주요국(중국 38%, 독일 50%)보다 높습니다. 달러의 구매력 덕분에 미국은 수출보다 수입을 더 많이 하며, 이는 무역 적자를 구조적으로 확대합니다.
  • 글로벌 공급망: 미국은 고부가가치 산업(기술, 금융) 중심으로 경제 구조가 전환되며, 제조업 기반 상품은 중국, 멕시코 등에서 수입합니다. 2024년 미국의 최대 수입국은 중국(4,290억 달러), 멕시코(3,200억 달러)로, 이들 국가와의 적자는 각각 2,790억 달러, 1,520억 달러에 달합니다.

(3) 자본 계정 흑자와 무역 적자의 상호작용

국제수지의 기본 원칙에 따르면, 경상 계정(무역+서비스+소득)의 적자는 자본 계정 흑자로 상쇄됩니다. 미국은 무역 적자를 유지하지만, 자본 계정에서는 흑자를 기록합니다.
  • 외국인 투자: 중국, 일본, 유럽 등은 무역으로 번 달러를 미국 국채, 주식, 부동산 등에 재투자합니다. 2024년 기준 미국 국채의 약 30%는 외국인(주로 일본, 중국)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 안전 자산 선호: 달러와 미국 자산은 글로벌 위기 시 ‘안전 자산’으로 간주되어 수요가 높습니다. 이는 미국이 낮은 금리로 차입하며 무역 적자를 지속 가능하게 만듭니다.
  • 결과적으로, 무역 적자는 달러를 해외로 유출시키고, 이 달러는 자본 유입으로 미국으로 돌아오는 순환 구조를 형성합니다. 이 순환이 기축통화국의 경제 구조를 유지하는 핵심입니다.

(4) 글로벌 경제의 불균형

기축통화국은 글로벌 경제의 불균형을 흡수하는 역할을 합니다.
  • 수출국 전략: 중국, 독일, 한국 같은 수출 중심 국가들은 자국 통화를 약세로 유지해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고, 달러를 외환 보유고로 축적합니다. 이는 미국의 무역 적자를 키우는 요인입니다.
  • 소비 중심 경제: 미국은 세계 최대 소비 시장으로, 글로벌 생산(중국 제조, 사우디 석유 등)을 흡수합니다. 이는 미국이 무역 적자를 감수하며 글로벌 수요를 떠받치는 구조를 만듭니다.

3. 무역 적자가 필연적이지 않을 수도 있는가?

기축통화국이 무역 흑자를 기록하는 것이 이론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 미국이 무역 흑자를 내면 달러 공급이 줄어들어 글로벌 유동성이 위축됩니다. 이는 신흥국 경제와 글로벌 무역에 타격을 줄 가능성이 큽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플라자합의로 달러 약세가 유도되었을 때 미국 무역 적자는 일시적으로 줄었지만, 곧 다시 확대되었습니다.
  • 무역 흑자를 위해 달러 가치를 대폭 절하하거나 보호주의(관세 등)를 강화하면,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이는 트리핀 딜레마의 또 다른 측면입니다.
  • 미국의 소비 중심 경제와 제조업 쇠퇴는 무역 흑자를 어렵게 만듭니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2025년 기준 10% 보편 관세 등)은 적자를 줄이려는 시도지만, 보복 관세와 공급망 혼란으로 효과가 제한적일 가능성이 큽니다.

4. 역사적 맥락

미국은 197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무역 적자를 기록해 왔습니다:
  • 브레턴우즈 붕괴(1971): 금본위제 폐지 이후 달러는 완전한 명목통화로 전환되었고, 미국은 무역 적자를 통해 달러를 공급하며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했습니다.
  • 1980년대 플라자합의: 달러 강세로 무역 적자가 치솟자, 미국은 일본·독일과 합의해 달러 약세를 유도했지만, 적자는 구조적으로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 2000년대 중국의 부상: 중국의 WTO 가입(2001) 이후 미국의 대중국 무역 적자는 급증하며 글로벌 불균형이 심화되었습니다.

마무리

기축통화국인 미국이 무역 적자를 겪을 수밖에 없는 이유트리핀 딜레마, 달러의 글로벌 수요, 자본 계정 흑자 구조, 그리고 글로벌 경제의 불균형 때문입니다. 미국은 달러를 세계에 공급하기 위해 무역 적자를 감수하며, 이는 기축통화의 특권과 책임이 얽힌 필연적 결과입니다. 적자를 줄이려는 시도(관세, 통화 절하 등)는 단기 효과를 낼 수 있지만, 달러의 지위와 글로벌 경제의 안정성을 유지하려면 적자가 구조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무역 적자는 기축통화국의 ‘부담’이지만, 동시에 달러 패권을 유지하는 기반입니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적자를 줄이려는 시도라 하더라도, 글로벌 유동성과 달러 수요가 줄어들면 미국 경제에도 부정적 파급효과가 클 것입니다.
미국이 기축통화를 포기하지 않는한 무역 적자를 필연적인 것으로 "트럼프의 기업운영 사고 방식을 국가운영에 적용하려는 역사적인 오판"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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